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중의 두 가지 노선 (문단 편집) == 여파 == 이 연설의 발표로 조반파와 보수파의 위세가 바뀌었다. 보수파 홍위병들은 난데없이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을 추종하는 반동의 자제들이 되었고 이에 당혹한 상당수 보수파 홍위병들은 기존의 급진적 입장을 버리고 정말로 보수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반면 흑오류와 회오류 출신 학생들은 크게 고무되어 11월에 이르러서는 조반파 홍위병의 기세가 크게 약진했다. 이제 흑오류 홍위병은 자신이 흑오류임을 매우 당당하게 밝힐 수 있었다. 옛것들을 공격하던 보수파와 달리 조반파는 기존 당내 고급 간부들을 공격했다. 빌딩과 학교와 사무실을 점거한 조반파 홍위병들은 차량과 무기로 무장하고 보수파 홍위병과 부르주아 반동 노선을 따른다고 추정되는 당 간부들을 공격했다. 11월 1일 <마오 주석이 제시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선의 승리>라는 사설이 발표되어 보수파를 깎아내리고 조반파를 추켜세우며 고위 당원들을 반당 분자, 우파, 가짜 혁명가, 좌파 행세를 하는 우파로 몰아세웠다. 이에 조반파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져서 홍오류들까지 조반파에 합세, 조반파가 홍위병 운동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보황파, 부르주아 노선 추종자, 즉 주자파로 보이는 고위 당원들을 마구 공격함으로 중국은 대혼란에 빠졌다. 사태를 진정시키려던 [[인민해방군]]마저 마오쩌둥이 장칭과 천보다가 쓸모없어보이면 그들을 죽여라. 그럼 나도 물러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무력화되었고 마침내 왕광메이가 1967년 4월 10일 콰다이푸라는 홍위병의 주도로 조리돌림당했는데 이 콰다이푸는 과거 왕광메이가 파견한 공작대에게 우파로 몰려 조리돌림당했던 인물이었다. 기세가 오른 조반파들은 군대까지 공격하여 이들의 무기로 무장했고 마침내 류사오치도 숙청되었다. 하지만 혈통론 자체는 끝내 배격되지 않았고 이후 보수파와 조반파 홍위병들 사이의 끝없는 싸움이 벌어지며 이후 중국은 한치 앞을 가릴 수 없는 혼란의 길로 치닫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